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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스 영화, 각본, 조명, 세트 디자인

by hanje1004 2025. 8. 21.

2013년 개봉한 영화 트랙스는 실존 인물인 로빈 데이비슨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이 영화의 각본, 조명, 세트디자인을 소개하겠습니다.

트랙스 영화 관련 포스터

각본: 침묵과 리듬으로 설계된 내면의 여정

트랙스의 각본은 로빈 데이비슨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하여 마리사 시바이스가 각색했으며, 극적인 장면보다 내면의 변화에 중점을 둔 독창적인 구조를 취한다. 이 영화의 각본은 전통적인 삼막 구조에서 탈피하여, 기승전결을 분명하게 나누지 않고 시간과 공간의 흐름에 따라 감정의 고조와 해소를 유기적으로 조율한다. 로빈이 사막 횡단을 결심하고 준비하는 전반부는 사건보다 분위기에 집중하며, 사회로부터의 거리감, 타인과의 불화,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고독 등을 짧고 절제된 대사로 표현한다. 인물 간의 충돌이나 감정의 폭발은 거의 없고, 로빈의 시선과 선택을 따라가며 그녀의 심리적 상태를 차분히 누적시킨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바로 대사가 없거나 적은 구간에서 드러나는 감정선이다. 내레이션으로 처리하지 않고, 표정과 동작, 풍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읽게 만드는 이 각본은 관객이 스스로 해석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긴다. 로빈의 여정은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감정의 연속으로 전개되며, 극적인 반전이나 위기보다는 사소한 갈등과 변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다.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예컨대 사진가 릭 스몰란, 원주민 가이드, 외딴 지역의 주민들—과의 짧은 만남은 모두 서사의 일부라기보다는 그녀의 내면적 층위를 드러내는 거울로 작용하며, 각본은 이 인물들을 단순한 조연이 아닌 하나의 장면적 상징으로 배치한다. 사막 속에서 자신과 자연만이 남았을 때, 그녀가 마주하는 고요와 두려움은 곧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외로움이며, 이 외로움 속에서 자유와 해방의 감각이 탄생한다. 이러한 감정의 여정은 말로 설명되지 않고, 장면의 배열과 침묵의 리듬, 그리고 상징적 장치들을 통해 구현되며, 그 자체가 문학적이면서도 영화적인 서사의 깊이를 만들어낸다.

조명: 햇빛과 그림자로 설계된 감정의 밀도

트랙스의 조명은 인위적인 광원이 아닌 자연광 위주의 설계를 통해 영화의 감정적 리얼리즘을 완성한다. 사막이라는 공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빛의 조건 속에서 인물의 감정과 관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이 영화의 조명 연출은 그러한 자연 조건을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예술적으로 통제한다. 특히 일출과 일몰 시의 황금빛은 로빈의 내면이 가장 고요하고, 때로는 흔들리는 순간들과 맞물려 사용되며, 그 장면들은 대사가 없이도 감정을 전달하는 힘을 갖는다. 반대로 한낮의 직사광선은 그녀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극한에 도달했을 때의 혼란스러움과 고통을 강조하고, 인물의 그림자가 짧아질수록 그녀의 고독과 외부와의 단절이 극대화된다. 밤 장면에서는 조명을 거의 배제하고, 달빛 혹은 불빛, 손전등 하나에 의존하는 구성으로 극도의 정적과 불안을 표현한다. 로빈이 텐트 안에서 홀로 있는 장면이나, 불가에서 생각에 잠긴 장면들은 빛의 부족함을 통해 보이지 않음과 고립의 감정을 시각화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의 시선 너머까지 감각하도록 만든다. 또한 조명은 감정의 흐름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로빈이 낙타들과 깊은 교감을 나누는 순간, 햇빛은 부드럽고 따뜻하게 그녀를 감싸며, 외로움보다는 유대감이 강조된다. 이러한 대비는 로빈이 자연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안기는 방식으로 삶을 해석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사막이라는 극단적인 환경은 영화적 표현의 제약이 될 수 있지만, 트랙스는 오히려 그것을 가장 강력한 정서적 배경으로 활용하며, 조명은 이 환경과 인물의 정서를 조화롭게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자연의 광원은 때로는 적, 때로는 친구가 되며, 로빈이 마주하는 심리적 기후를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는 감정의 언어로 작동한다.

세트 디자인: 사막이라는 거대한 무대의 절제된 활용

트랙스의 세트 디자인은 전통적인 의미의 디자인된 공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의 핵심은 세트를 어떻게 설계하지 않았는가에 있다. 로빈의 여정 대부분은 실제 사막 한가운데에서 촬영되었으며, 카메라는 인공적인 세팅 없이 자연 그대로의 배경을 수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설계의 태도야말로 가장 치밀하게 구성된 세트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사막이라는 공간은 단조롭고 거대하며, 때로는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 빈 공간이지만, 영화는 이 거대한 무대를 다양한 각도와 구도로 분절하고 재구성함으로써 매 장면마다 다른 정서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로빈이 새벽에 길을 나서는 장면과 똑같은 장소를 한낮에 다시 찍었을 때, 그 배경은 전혀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공간 자체의 변주가 아니라, 시간과 감정이 공간을 바꾸는 방식을 세트 디자인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로빈의 캠프, 텐트, 낙타가 머무는 장소는 이동과 정지를 반복하며 서사의 호흡을 조절하고, 거기에 배치되는 소지품, 물통, 지도, 신발 등은 매우 단순하지만 인물의 상태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또한 원주민 마을이나 외딴 집, 기차역, 도심의 풍경 등은 로빈이 자연 속에서 벗어나는 순간마다 등장하는데, 이들은 현대 문명과의 대비를 형성하며 사막이라는 공간이 그녀에게 어떤 해방감을 주는지를 명확히 드러낸다. 이 영화는 공간을 장식하거나 꾸미는 대신, 어떻게 비워내고 단순화할 것인가에 집중하며, 그 비워진 공간이 관객의 해석과 감정을 투사할 수 있는 스크린이 되도록 유도한다. 세트 디자인은 이렇듯 시각적 요소뿐 아니라 정서적 밀도를 위한 전략으로 기능하며, 로빈이 걷는 한 발 한 발의 의미를 더욱 깊게 만든다. 촬영지의 선택 또한 세트 디자인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제작진은 사막의 다양한 풍경 속에서 가장 정서적 파장이 큰 장소들을 선별하고, 그 안에 인물을 배치하여 공간이 인물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장면을 구성한다. 트랙스의 세트 디자인은 무대와 조형이라는 개념을 넘어, 인물과 자연이 함께 살아 숨 쉬는 호흡으로 기능하며, 극한의 미니멀리즘 속에서도 풍부한 감정과 사유의 공간을 창출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