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 타르 감독과 작가 라슬로 크라사나호르카이의 공동작업으로 완성된 영화 토리노의 말은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에게 매달려 울부짖은 일화를 기반으로 삼아, 인간 존재와 세계의 붕괴를 무채색의 이미지와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영화의 시점, 작가, 제작배경을 소개하겠습니다.
시점: 제한된 관찰자 시점으로 구현된 무력한 세계
토리노의 말은 전지적 시점이나 주관적 내레이션을 배제하고, 극도로 제한된 관찰자 시점만으로 영화를 전개한다. 관객은 인물의 내면을 설명하는 어떤 장치도 없이, 그저 말없이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지켜보게 된다. 카메라는 거의 대부분 정적인 롱 테이크와 느린 줌, 고정된 앵글로 인물을 뒤쫓으며, 이 모든 시점은 마치 신 없는 세계를 무심하게 관찰하는 차가운 눈처럼 작동한다. 등장인물은 이름조차 없이 아버지와 딸로만 불리며, 그들의 감정이나 동기를 설명하는 어떤 외적 장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관객이 능동적인 해석을 하게 만드는 동시에,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전달한다. 벨라 타르의 카메라는 모든 사건을 감정적으로 중립적으로 기록하며, 주관적 개입을 최소화한다. 첫 장면에서 말이 수레를 끌고 험한 언덕을 내려가는 장면은 약 8분에 걸쳐 촬영되었으며, 이는 단순한 소개 장면이 아니라 이 영화의 전체 시점과 리듬을 제시하는 일종의 선언이다. 카메라는 그 움직임을 동행하면서도 절대 인물의 감정에 접근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점의 설정은 인간 존재의 극단적 고립과 우주적 무관심을 표현하는 철학적 장치이며, 인간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강제한다. 시점은 언제나 인물 뒤에 있으며, 인물과 거리를 유지하고, 정서적 동일시가 불가능한 거리를 조성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서사보다는 정서적 분위기와 존재론적 질문에 집중하며, 시점의 비감정성이 오히려 더 큰 비극성과 실존적 깊이를 만든다. 카메라의 무심함은 곧 세계의 무심함을 반영하고 있으며, 인간은 이 무심한 시점 안에서 반복되는 무의미를 감내해야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시점은 영화 전체를 일관되게 통제하며, 비주류 영화 문법의 극단을 실현하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작가: 라슬로 크라사나호르카이와 벨라 타르의 철학적 협업
토리노의 말은 감독 벨라 타르와 헝가리 문학계의 거장 라슬로 크라사나호르카이의 협업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두 사람은 1988년 사탄탱고에서부터 공동 작업을 이어오며, 실존적 공허와 시스템 비판, 문명의 붕괴라는 주제를 문학과 영화의 언어로 병렬적으로 탐구해왔다. 이 영화는 크라사나호르카이의 철학적 상상에서 출발한다. 니체가 토리노 거리에서 말이 채찍질 당하는 모습을 보고 울며 쓰러졌다는 일화에서 착안하여, 그 말의 운명과 주변 인물들의 고통스러운 반복된 일상을 가정한다. 그러나 이 설정은 표면적인 서사의 장치일 뿐, 영화는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의 끝을 바라보는 문학적 상상력을 시각적 언어로 구체화하는 것이 작가적 의도다. 크라사나호르카이는 반복, 침묵, 붕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무력함을 강조하며,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 자체가 얼마나 부조리하고 한계적인지를 드러낸다. 벨라 타르 감독은 이를 영화적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시간의 흐름을 왜곡하지 않고 오히려 과도하게 천천히 보여주며, 이미지와 움직임의 물리적 지속성을 통해 존재의 무게를 강조한다. 이 둘의 협업은 각기 다른 매체를 통해 동일한 주제를 반복하며 심화시켜온 독창적 예술적 연대다. 크라사나호르카이는 영화 속 대사와 구조 대부분을 문학적 리듬으로 구성했고, 벨라 타르는 이를 그대로 시각적 리듬으로 번역해냈다. 대사는 거의 없지만, 등장인물이 외부인에게 들려주는 장황한 독백은 철학적 선언처럼 기능하며, 이는 문학의 문장과 같은 방식으로 영화 속에 존재한다. 이처럼 작가적 개입은 영화의 전체 리듬과 구조, 사운드와 편집 방식에까지 스며들어 있으며, 단순한 이야기 전달을 넘어 철학적 명상으로 기능한다. 토리노의 말은 작가의 철학을 감독이 영상 언어로 완전히 수용하고 확장시킨 드문 사례이며, 이 점에서 작가 중심 예술영화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제작배경: 종말의 미학을 향한 마지막 영화
토리노의 말은 벨라 타르 감독이 자신의 마지막 영화라고 선언하며 제작된 작품으로, 그 의도 자체가 영화의 세계관과 정서적 분위기를 결정짓는다. 영화는 헝가리 정부의 일부 제작지원과 유럽 아트하우스 배급망의 후원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예산은 비교적 적은 편이었지만 완성도와 연출의 밀도는 매우 높았다. 제작 전부터 벨라 타르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고 말해왔으며, 토리노의 말은 그가 30년간의 감독 경력을 정리하며 만들어낸 세계의 종말을 표현하는 종합예술적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헝가리의 외딴 지역에 지어진 폐쇄된 세트장에서 촬영되었으며, 극도로 제한된 공간에서 오로지 바람, 먼지, 어둠, 무거운 침묵만이 존재하는 세계를 구현했다. 제작팀은 실제 외딴 환경을 재현하기 위해 극심한 자연 조건 속에서 촬영을 감행했고, 이는 화면에 등장하는 황량한 바람, 반복되는 식사 장면, 마르지 않는 어둠 속에 깊이 녹아들어 있다. 촬영은 전체 30일 동안 이뤄졌으며, 35mm 흑백 필름으로 촬영되었다. 이 필름 포맷은 의도적으로 고전적이고 무겁게 설계된 영상 스타일을 극대화하며, 디지털 카메라가 제공하는 선명한 감각이 아닌, 입자가 살아 있는 존재의 질감을 전달한다. 사운드 역시 최소한으로 설계되었고, 미할리 비그 감독의 음악은 반복되는 단 하나의 테마를 통해 영화의 반복성과 무게감을 강화한다. 이 음악은 주인공들이 밥을 먹고, 바람을 맞고, 물을 긷고, 등을 돌리는 모든 순간과 함께 흐르며, 결국 세계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유일한 감정적 지주로 작동한다. 벨라 타르는 사탄탱고 이후 현실 정치와 인간 군상에 대한 거대한 비판을 수행해 왔으며, 토리노의 말을 통해 그 절정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그는 이 영화를 끝으로 감독직을 공식 은퇴하였고, 이후 영화교육과 제작 환경 개선을 위한 활동에 집중했다. 이처럼 토리노의 말의 제작배경은 단지 한 편의 영화가 아닌, 하나의 창작 세계가 마무리되는 지점이었으며, 종말과 침묵이라는 영화의 주제를 현실 속 창작자의 종결 선언과 정확히 일치시키는 예술적 의도였다. 이러한 제작의도는 영화 전체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으며, 시청자는 이 작품을 통해 한 예술가가 세상에 던진 마지막 질문을 목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