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개봉한 영화 레이디 버드는 그레타 거윅 감독의 첫 단독 연출작으로, 자전적 요소를 바탕으로 한 성장 드라마이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 미장센, 감독을 소개하겠습니다.
사운드트랙: 감정을 채우는 시대의 공기와 내면의 리듬
레이디 버드의 사운드트랙은 단순히 배경음악이 아니라, 주인공의 감정선과 시대적 분위기를 섬세하게 설계하는 정서적 도구로 기능한다. 음악감독 존 브라이언은 영화의 전반적인 톤에 맞춰 잔잔하고 따뜻한 오케스트레이션을 구성했으며, 각 장면의 흐름에 따라 정서적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음악을 배치했다. 이 영화는 2002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반영하듯 당시의 미국 대중음악이 극 중에 다양하게 삽입된다. 특히 데이브 매튜스 밴드의 "Crash Into Me", 알란티스 모리셋의 "Hand in My Pocket",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Cry Me a River" 등의 곡은 주인공 레이디 버드의 감정 변화와 청소년기의 혼란스러운 정체성 탐색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Crash Into Me"는 주인공이 첫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장면에 삽입되며, 그 순간의 설렘과 두근거림을 음악으로 증폭시킨다. 이 곡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캐릭터의 감정을 내면화시키는 장치로 작동하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 장면과 함께 기억될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처럼 사운드트랙은 캐릭터의 감정 변화에 따라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특정 감정의 흐름이나 장면 전환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또한 클래식 곡이나 합창단의 성가곡 등도 영화의 정서적 깊이를 더하는 요소로 삽입된다. 가톨릭 고등학교 배경을 반영한 합창단 장면에서 들리는 종교 음악은 주인공의 내면적 혼란과 동시에 구조적인 질서감을 상징하며, 사운드트랙의 다층적 활용을 보여준다. 존 브라이언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지나치게 감정적이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자극하는 정제된 음악 언어를 구사하고 있으며, 인디 영화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멜랑콜리한 톤을 유지한다. 이러한 음악 구성은 레이디 버드의 성장기를 따라가며, 시청자 또한 그녀의 감정과 함께 움직이도록 만든다. 레이디 버드의 사운드트랙은 시대의 공기, 인물의 내면, 이야기의 정서를 함께 구성하는 복합적인 음악 설계로서, 영화 전체의 감정 구조를 촘촘히 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미장센: 새크라멘토의 일상성과 감정의 공간화
레이디 버드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감독 그레타 거윅의 자전적 기억이 고스란히 투영된 공간이다. 미장센 측면에서 이 영화는 공간과 오브제를 단순한 배경이 아닌 정서적 맥락의 일부로 활용하며, 인물의 심리와 관계, 시대의 공기를 시각적으로 체화한다. 촬영감독 샘 레비는 로케이션 촬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크라멘토의 도시 풍경, 고등학교, 가정집, 교회, 슈퍼마켓 등 일상의 장소들을 섬세하게 카메라에 담는다. 주인공의 집은 좁고 다소 낡았지만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 그려지며, 가구 하나하나에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다. 이런 미장센은 중산층 이하 가정의 현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주인공이 왜 새크라멘토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지를 시각적으로 설명한다. 한편, 그녀가 동경하는 동부의 대학 도시는 영화 후반부에 잠깐 등장하지만, 그 대비를 통해 인물의 내면 갈등을 강화하는 장치가 된다. 교실, 복도, 공연장, 무도회장은 모두 통과의례처럼 연출되며, 인물의 감정 곡선에 따라 조명과 색채가 정교하게 변주된다. 레이디 버드의 교복은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그녀의 내면 변화에 따라 그 상징이 조금씩 달라진다. 때로는 억압의 상징, 때로는 일상의 일부로, 미장센은 이 같은 상징 변화를 통해 시청자에게 자연스럽게 감정 이입을 유도한다. 미술팀은 2002년이라는 시대를 반영하기 위해 실제 그 시절의 피처폰, 낡은 노트북, 종이책, 당시 유행하던 벽 장식 등을 활용하며, 시간적 배경을 확실히 고정시킨다. 인물 간 거리감을 보여주는 구도, 대립과 화해를 시각화하는 공간 배치, 어머니와의 갈등이 고조되는 자동차 장면에서의 카메라 움직임 등은 모두 감정을 공간화하는 그레타 거윅 감독 특유의 미장센 전략이다. 이 영화에서 미장센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연장선이자 기억의 시각적 재현이며, 주인공의 시선과 동경, 반항과 수용을 함께 구성하는 언어다. 그레타 거윅은 미장센을 통해 새크라멘토라는 도시를 떠나고 싶었던 곳에서 사랑하게 된 장소로 천천히 변화시키며, 성장이라는 테마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낸다.
감독: 그레타 거윅의 자전성과 여성 서사의 혁신
레이디 버드는 그레타 거윅의 단독 감독 데뷔작이자, 그녀의 자전적 경험이 짙게 스며든 영화로 감독으로서 그녀가 지닌 세계관과 연출 스타일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레타 거윅은 배우이자 작가, 감독으로 활동해온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로, 이 영화에서 자신이 성장한 새크라멘토를 배경으로 하고, 2002년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 한 소녀의 성장기를 매우 섬세하고 유머러스하게 담아낸다. 그녀는 전통적인 성장 서사나 클리셰에 의존하지 않고,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풍부한 감정과 디테일로 채워 넣으며, 나를 찾아가는 복잡하고 미묘한 과정을 시청자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특히 모녀 관계의 묘사는 이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데, 거윅 감독은 모성과 딸의 충돌을 단선적인 갈등이 아니라, 사랑과 오해, 독립과 유대가 동시에 얽혀 있는 복합적 관계로 풀어낸다. 어머니는 딸을 위해 희생하지만 동시에 통제하려 하고, 딸은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자유를 갈망하며 충돌한다. 이러한 정서적 구조는 감독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진정성 있는 시선 덕분에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연출 방식 또한 유려하다. 장면 전환은 빠르고 리듬감 있으며, 불필요한 설명 없이도 인물 간 감정의 변화가 명확히 전달된다. 감독은 때로는 유머를, 때로는 고요한 감정을 삽입하면서 극의 긴장감을 조율하고, 이를 통해 감정의 파고를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만든다. 대사와 사운드, 시각적 연출의 균형감도 매우 뛰어나며, 인물의 말보다 행동이나 눈빛, 침묵 속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도 많다. 레이디 버드는 그레타 거윅의 첫 연출작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성숙하고 안정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아카데미 감독상, 각본상 후보에 올랐고 전미비평가협회 최우수 작품상 등을 수상하며 비평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여성 감독으로서의 독자적 목소리를 구축했으며, 이후 작은 아씨들, 바비로 이어지는 자신만의 연출 세계를 더욱 확장하게 된다. 레이디 버드는 단지 성장 드라마가 아니라, 여성의 시선으로 삶과 가족, 사랑과 사회를 바라보는 방법을 보여주는 귀중한 연출의 결과물이다.